장옷
기증자의 시어머니 최난수(1920~2018)가 1942년도 황해도 지역에서 서양식 혼례 후 폐백 때 착용한 장옷이다. 식구들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될 무렵 시어머니가 피난 갈 때도 가져갔다고 하며 트렁크 속에 간직하던 혼수품들을 처음으로 꺼내서 보여주고 나서 동네 한복집에 다 갖다주었다고 한다. 기증자가 모교에서 박물관을 설립하기 위해 복식류 등을 기증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찾아와서 저고리 4점과 함께 기증했다. 시어머니는 해주 행정고녀를 나와 서울로 유학 와서 경성사범을 졸업하고 해주와 서울에서 교편생활을 했다. 언제나 일등을 놓치지 않아 도지사상으로 받은 영어사전을 캐나다 병원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간직했다. 겉감은 연두색의 경사와 붉은색의 위사가 사용된 고단(庫段)으로 분류되는 고급 옷감이다. 원형수자문(圓形壽字紋)·표주박문[葫蘆紋]·박쥐문[蝙蝠紋] 등 별문(別紋)이 시문되었는데 별문은 궁에서 사용하던 문양이다. 동정과 소매 끝의 거들지는 소색(素色) 모본단(模本緞)이다. 고름은 자주색과 홍색 비단으로 각각 한 쌍씩 달았다. 화려한 비단을 사용하여 여미는 부분의 문양까지 정교하게 맞추어서 바느질하였다. 장옷은 장의(長衣)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여성의 긴 겉옷을 말하는 것으로 조선 전기에는 여성의 외출용 겉옷이나 예복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남녀가 하는 일을 엄격히 구분하고 얼굴을 서로 마주 대하는 것조차 함부로 하지 않게 하는 등 엄격한 규제가 생겼다. 따라서 여성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는 복식이 발달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옷이 장옷이다. 긴 옷을 머리에 쓰고 양쪽에 달린 끈을 두 손에 쥐면 소매는 양쪽 귀 아래로 내려처지는 모양이 된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이와 같은 고단으로 제작된 자주색 어린이용 두루마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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